'일본군 위안부'
일본 정부에 징용되어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다. '위안'이라는 단어가 일본군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기 때문에 작은 따옴표를 이용하여 일본군 '위안부'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부에서 '근로정신대'(勤勞挺身隊)인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를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여자정신대는 일본 정부에 징용되고, 일반의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 반면 일본군 '위안부'는 일반의 노동 대신에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다. '정신대'의 '정신(挺身)'은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 출처 위키백과 - 위안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타결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공동기자회견 후 악수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을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했으며, 아베 신조 총리도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재단에 일본 측에서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의 법적 책임 문제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여부 등 핵심 쟁점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입증과 평가의 길을 원천 차단해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게다가 그동안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던 정부는 정작 피해자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는 이번 합의에 대해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전문]한일 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 합의···나눔의 집 “피해자 외면 정치적 야합”<경향신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타결] 피해자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밀어붙여…국민 납득 불투명<경향신문 2015년 12월 29일>
[정리뉴스]‘위안부 합의’ 1년 동안 무슨 일이<향이네 2017년 1월 17일>
위안부 기림비
재미 한인단체인 한미공공정책위원회(KAPAC) 관계자들이 2014년 01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낫소카운티 아이젠하워파크 현충원에서 미국 제2의 종군위안부 기림비 양 옆에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를 설치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0년 10월 미국 뉴욕의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소장이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 도서관 앞에 미국 내 첫 번째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다. 설립 때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부각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펠리세이즈파크 시립도서관을 포함하여, 뉴저지 버겐카운티 청사 앞, 뉴욕주 롱아일랜드 낫소카운티 현충원,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글렌데일시 공원, 버지니아 페어펙스 등 미국 전역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관련기사
김동석 뉴욕 시민참여센터 소장 “위안부 기림비 LA에도 세울 것”<경향신문 2012년 5월 30일>
미 뉴저지 위안부 기림비에도 ‘독도는 일본 땅’ 말뚝 테러<경향신문 2012년 10월 28일>
뉴욕에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 세워졌다<경향신문 2014년 1월 20일>
[단독]미국에 5번째 ‘위안부 기림비’<경향신문 2014년 5월 22일>
수요시위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수요시위 25주년을 기념해 25개의 촛불을 끄고 있다
수요시위는 대한민국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항의 시위로, 1992년 1월 8일에 10여 명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집회이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위안부
■관련기사
“시위 때마다 생존 할머니 줄어 안타까워… 한국사 국정화, 아베 왜곡 방향과 똑같아"<경향신문 2015년 10월 14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시민들 수요시위 4주째 이어져<경향신문 2016년 1월 21일>
[포토뉴스]1992년 첫 수요시위…25주년 맞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경향신문 2017년 1월 4일>
평화의 소녀상
2016년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평화의 소녀상 뒤에 선 참가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 철회’를 촉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동상이다.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1000번째를 맞이한 날에 서울 종로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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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테러’ 일본인 불구속 기소<경향신문 2013년 2월 17일>
[한·일 ‘위안부 문제’ 타결]양국 벌써 딴소리…‘소녀상’ 갈등 소지<경향신문 2015년 12월 29일>
"위안부상 이전이 10억엔 지출의 전제 조건"...일본 언론들 보도<경향신문 2015년 12월 30일>